[WEB재록]앙상블 스퀘어 괴인 침입 사건
2022년 5월 1일 <어나더 스테이지> 혈육 날조 앤솔로지 『가족사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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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앤솔로지 인포: https://www.postype.com/@situvien/post/12221988

 

아오바 츠무기 파트로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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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아, 네, 늘 신세 지고 있습니다.

 

스타메이커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는 이즈미사와 유카라고 합니다. 기,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셔도, 네, 아닙니다. 아,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제가 본 게 분명 지난달 3일이었을 거예요. 그날은 수록 부스에 일이 있어서 8층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이 사람이 걸어와서,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으셔서 물어봤죠. 8층은 이것저것 시설이 모여 있잖아요. 신입이라던가 외부에서 일하러 오신 분들은 자주 길을 헤매셔요.

 

아, 참고하시겠다요? 앗, 감사합니다.

 

……아니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그래서 제가 어디로 가시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제가 말을 걸자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하고 그대로 도망가셨어요. 네, 그게 다예요. 네? 출입증이요? 그러게요, 으음, 출입증이 있었던가, 아마 못 본 것 같긴 해요.

 

네, 감사합니다. 아, 일단 대외비로요? 넵, 네, 알겠습니다. 저,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1

 

“우왓! 으아, 세, 세이프!”

 

눈앞에서 쏟아질 뻔한 음료를 겨우 잡아 균형을 맞춘 니키는 고개를 돌려 복도 뒤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라고는 저와 그밖에 없어 보이던 복도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자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남자는 이미 복도 저 멀리, 갈색 셔츠와 청바지가 하나의 검은 점처럼 보이더니, 쾅, 하고 비상계단이 있는 쪽의 철제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5개의 테이크아웃 컵의 균형을 다시 맞춰 품에 끌어안고 자신이 나아가던 방향을 다시 보자, 이번에는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온 쪽과 같은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이번에는 니키도 아는 얼굴이었기에, 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이즈미사왓 씨~ 방금 그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아, 시이나 씨. 좋은 낮입니다. 혹시 이쪽으로 가던 그 남자분 벌써 가셨어요?”

 

“에, 네. 급하게 저기 계단으로 가던데요? 아는 사람이에여?”

 

니키는 여전히 음료 다섯 개를 품에 안은 채로, 자신보다 키가 작은 눈앞의 직원을 내려다보았다. 이즈미사와 유카, 스타메이커 프로덕션 소속의 직원이기에 기본적으로는 니키와 함께 일을 하거나 사무를 맡긴 적은 없지만, 카페 시나몬의 단골이었기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안면을 튼 사이였다. 이즈미사와는 곤란하단 듯이 표정을 찡그리더니, 니키의 등 뒤, 남자가 사라진 복도를 한 번 보고는 다시 니키를 보며 제 볼을 긁적였다.

 

“그게요, 저도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헤매고 있는 외부 관계자거나, 배달원이나, 관리직원인가 하고 말을 걸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도망치셔서.”

 

“도망? 위험한 사람인 건가여?!”

 

“아, 아뇨?! 오히려 그쪽이 먼저 도망가서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으음, 뭔가, 엄청나게 낯을 가리는 직원이라던가……. 그래도 그 텐쇼인 재단이 설계와 관리를 담당하는 건물에, 수상쩍은 사람이 출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 죠? 제 희망 사항일지도 모르겠지만!”

 

“으음, 그러게요~ 우리 코즈프로에 부소장도 꽤나 보안 면에선 늘 신경쓰고 있는 것 같구여? 아 이전에도 무슨 소방 훈련이다 뭐다, 이즈미사왓 씨도 그거 하셨어요?”

 

그렇게 점점 논지에서 벗어나 평소와 같은 잡담이 되기 시작하려던 때, 이즈미사와가 니키가 든 음료에서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곤 아, 하고 탄식처럼 목소리를 흘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이나 씨, 회의 가던 중이던가요?! 뭔가 음료 들고 있고? 빨리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붙잡고 있었죠?”

 

“아앗, 맞아! 으악, 늦으면 린네 군이 또 뭐라 한소리 할지도! 냐하하, 그럼 이즈미사왓 씨, 나중에 그 괴인 씨 정체를 알게 되면 시나몬에 들려서 알려줘여!”

 

니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흔들며 가려다가 손에 든 음료에 막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거기에 이즈미사와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니키는 다시 Crazy:B의 네 명과 프로듀서 한 명, 총 다섯 명의 음료를 들고 복도를 걸어 나갔고, 평소대로 어이, 니키, 너 감히 우리 음료의 얼음이 녹을 만큼 늦다니 그 머리 이번에야말로 밀어버린다? 하고 장난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게 놀리는 린네와 자기 음료인 허브티만 슬쩍 가져가서 마시기 시작하는 HiMERU와 나름 그런 린네와 니키 사이를 중재하는 코하쿠와 프로듀서와 회의실에서 합류했다. 평소처럼 Crazy:B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일정 논의와 Beehive에서 계획된 라이브 세트 리스트 확인, 개인 계획을 조정하는, 두 시간 정도 이어진 회의가 끝난 이후에는 시이나 니키의 머리에서 복도에서 만난 ‘괴인’ 같은 것은 새까맣게 잊히고, 기억의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니키가 다시 그 수상한 괴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다음 주,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였다. 히나타가 소문, 들었어요? 하고 물어왔고, 거기에 먼저 대답한 것은 히이로였다. 무슨 소문? 괴인이요, 괴인! 요즘 신출귀몰한다는 유령인지 뭔지 모를 어두침침한 남자! 히나타는 그 이야기가 흥미로운 듯 제 주먹을 꼭 쥐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혹시 아는 게 없는지 물어왔다. 히나타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요 최근 아이돌의 성지, 앙상블스퀘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침침하고,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그 위에 후드 집업을 입어, 온몸으로 자신의 수상함을 드러내는 남자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남자가 처음 발견된 것은 녹음실이 있는 8층 복도였다가, 그다음은 리듬링크 사무실이 있는 12층, 그리고 그다음은 코즈프로가 있는 18층이더니, 이윽고 며칠 전에는 6층 의상실에서도 나타났단 것이다. 요 한 주간, 매일매일, 시간대는 제멋대로, 그러나 확실하게 동일인물인 남자. 늘 비슷한 복장을 하고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관측되는 순간에는 이미 도망가기 시작하고, 쫓아가더라도 계단에서 갑자기 사라져서 못 찾았단 사람이 벌써 세 명째다 뭐다, 소문이라고 할까, 괴담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 정체는 스토커다, 사생이다, 아니다 이 주변의 바다는 옛날에 어떤 사이비 종교가 지배하던 곳을 땅으로 메꾼 거라서 그 망령이다, 원한을 가진 귀신이다 뭐다, 온갖 근거 없이 난무하는 추측을 히나타가 제 손가락을 접어가며 하나하나 나열할 때쯤, 히이로와 같이 그 이야기를 듣던 니키가 갑작스럽게 아, 하고 지금까지 기억의 저편에 던져두었던 그 날의 일을 떠올렸고, 니키의 반응이 뭔가 아는 것이 있다고 판단한 히나타는 마치 희귀한 돌멩이라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니키 쪽을 바라보았다. 니키는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운 듯이 으에,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곤 자기 침대에 앉아 별거 아니라고 덧붙였지만, 이미 히나타는 이야기를 듣기 전엔 니키의 침대에서 안 내려갈 기세로 니키의 침대 위로 올라왔고, 히이로도 흥미가 있단 듯이 니키의 침대 옆의 바닥에 앉았다. 두 명의 시선에 결국 니키는 입을 열었다.

 

“저, 그 사람 봤어요. 제대로 사람일걸여~ 부딪혀서 음료를 쏟을뻔해서 기억하니까?”

 

“뭐?! 봤어? 아니, 그리고 부딪혔다니 만나기도 했어?! 접촉? 인간!? 유령이 아니라? 앗, 시이나 선배가 사실 유령을 본다던가 그런 기운이 있는 건 아니고?”

 

“우와앗, 히나타 군, 하나씩, 하나씩! 침대, 침대 흔들거리고!”

 

니키의 침대 위에서 몸을 들썩이는 히나타와 그때마다 몸이 흔들리던 니키는 이내 히나타의 어깨를 붙잡고 일단 진정시키더니, 으음, 하고 기억을 쥐어짜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미간의 주름이 풀리더니 니키의 입이 열렸다.

 

“진짜로 딱 그거뿐인데, 어쨌든 뭔가 도망치듯이 갑자기 사라졌으니까여? 오히려 마요쨩 쪽이 좀 더 괴인 같다고 해야 하나……. 이제와 괴인이라던가 유령이라 해도 현실감이 없구요?”

 

“아, 확실히 아야세 선배가 그렇게 치면 더 괴인 같긴 하지? 으흠, 확실히 새삼스럽기도 할지도. 또 특이한 아이돌 지망생이라던가, 아님 스태프일지도 모르겠네~ 으으, 뭔가 김이 샌 기분.”

 

“으무, 확실히 아이돌이란 건 그런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들었어. 그것도 어떤 특훈 같은 걸 수도 있는 걸까? 그래도 마치 이 대화 대로면 마요이 선배가 그 수상한 괴인이랑 같은 취급인데, 마요이 선배는 수상한 사람은 아니야!”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셋의 대화는 그렇게 그대로 괴인에서 아야세 마요이로 옮겨갔고, 히이로가 내일은 아침부터 연습이 있다고 먼저 침대에 누웠고, 히나타와 니키도 얌전히 불을 끄고 각자의 침대에 눕기로 했다. 자기 직전, 니키는 다시 한번 그때 잠깐 봤던 그 상을 떠올려 봤다. 정작 둘 앞에서는 아이돌이나 스태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나 연령대가 아이돌 지망생과는 거리가 멀었단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돌이란 어떤 것인지는 아직 니키에게도 잘 알 수 없는 것이었기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정말 그냥 조금 음산하고 낯을 가리는, 그래 딱 그때 이즈미사왓 씨와 말했던, 모르는 외부 스태프나 직원일지도 모르지, 정도의 생각만 하고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괴인이 잡힌 것은 그로부터 몇 주 후의 일이었다. 웬일로 저녁 늦게까지 일하곤 시나몬에서 식사와 알코올 메뉴를 주문한 이즈미사와를 마주한 니키가 카운터석에 음식을 내려놓으면서 냐하하, 오늘은 야근이었나 봐요, 하고 가볍게 말을 걸자, 이즈미사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받은 음료를 꿀꺽 한 모금 마시고, 들어보세요, 시이나 씨! 하고 입을 뗀 것이다.

 

“그, 혹시 8층에서 녹음실! 거기서 부딪혔던 남자 기억나세요?!”

 

“으와앗, 그 요즘 화제의 괴인이요?”

 

니키의 반응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 이즈미사와는 이어서 요리를 한 입 입에 넣고는 평소처럼 맛있단 표정을 지었고, 니키도 그 표정에 만족하고 이즈미사와의 앞에 서서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아무래도 그때 니키와 이즈미사와가 본 남자가 그 괴인이 맞았다는 이야기였으며, 그 남자가 며칠 전, 결국 뉴디멘션 사무소 앞에서 미케지마 마다라에 의해 잡힐 뻔했다가 도망갔지만, 드디어 남자의 얼굴이 또렷이 CCTV에 잡혔고, 남자가 어떻게 이곳에 드나들었는지도 밝혀졌단 것이다. 아무래도, 남자의 지인 중에 관리인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드나들 수 있었단 것이었는데, 그 덕분에 현재 스타프로가 주도하여 관리팀을 구조 개혁하기 시작했고, 어찌 됐든 그 남자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해버린 이즈미사와도 이곳저곳 회의참가나 서류 작성을 위해 불러나갔다는 듯했다. 그건 수난이네요, 라고 말하며 니키는 부엌을 향하더니, 막 튀긴 해시 브라운 하나를 슬적 이즈미사와의 그릇 위에 올려줬다. 이즈미사와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그 서비스를 받았고, 이내 깨끗하게 비운 접시와 잔을 니키에게 다시 돌려줄 즈음엔 들어올 때의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방긋 웃으며, 니키에게 잘 먹었다고 손을 흔들며 나갔다.

 

그릇을 치우며 니키는 조금 전 들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러니까, ES의 경비가 살벌해지면 분명 그 건물에 있는 시나몬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거 때문에 손님들에게 불평을 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뭔가, 괜히 그 얼굴도 이젠 기억나지 않는 남자 때문에 괜히 일만 늘어난 기분인데여, 하고 니키는 속으로 불평을 뱉으며 테이블을 닦았다.

 

이렇게, 약 한 달간 이어진 앙상블스퀘어 괴인 침입 사건은 시이나 니키가 예상한 대로, ES 경비 강화로 인한 카페 시나몬의 약 이 주간의 매출 감소를 남기며, 그 막을 내렸다.

 

1.5

 

마마를 불렀니~?

 

아하하, 합연기연. 레이 씨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없지. 뭐, 다른 ‘서밋’의 중진들도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아. 자아, 그래서 역시 나를 부른 건 뉴디 복도에서 있던 일 때문이려나아? 응응, 확실히 그날 나는 츠무기 씨랑 나츠메 씨가 회의에 들어갈 동안 소라 씨랑 같이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니까.

 

으응, 그래. 케이토 씨가 말한 대로. 복도에서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 있었지. 그래도 뭐, 복도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 있는 건 흔한 일이잖니? 그런데 소라 씨가 그 사람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 하더라구우? 소라 씨 같은 아이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 그것도, 아는 사람을 보는 느낌은 아닌 눈으로. 그렇다면 예상되는 건 두 개 정도. 위험하거나, 특이하거나. 뭐, 둘은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하하하. 어쨌든, 이번엔 전자라고 판단했단다아.

 

독단이라고? 그렇지만 이바라 씨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같은 판단을 했을 거로 생각하는걸?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수상하리만큼 둘러보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어설픈 동작으로 숨으려고 하는 사람. 안타깝게도 비슷한 동작을 취하는 인간을 몇 번 본 적 있는데, 다들 뭔가에 취해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제정신은 아닌 상태였거든. 그러니까 일단 제압하려고 했었던 거란다?

 

뭐어, 다음은 거기에 있는 츠무기 씨도 알 테니까, 마마는 여기까지만 말하도록 할까아?

 

02

 

하루카와 소라가 회의에 들어간 사카사키 나츠메와 아오바 츠무기를 뒤로 하고 미케지마 마다라와 한 걸음 먼저 식당으로 향하기 위해 복도로 나왔을 때, 그 남자는 후드 집업을 푹 눌러쓴 채로, 관엽식물이 있는 쪽의 벽에 제 등을 기대며 뉴디멘션 사무소의 문 쪽을 보고 있었다. CCTV에 따르면, 남자는 소라와 마다라가 나오는 소리에 한 번 문 쪽을 바라보더니, 자신이 기다리던 상대가 아니었는지, 제 얼굴을 다시 푹 숙이고, 마치 제 몸을 숨기듯이 관엽식물 쪽으로 반걸음 더 달라붙었다고 한다.

 

그곳의 관엽식물은 사무실을 시업할 때 받은 것들로, 이상하게 식물을 잘 키우는 츠무기와 나츠메가 자주 물을 주고 뭔지 알 수 없는 영양제를 주어서인지, 꽤나 무성했고 그 틈 사이에 성인 남성 하나가 있어도 멀리선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소라의 눈에는 관엽 식물 사이에 우글거리는 불안한, 탁한 짙은 파란색이 보였고,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나온 순간, 그쪽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라가 시선을 돌려 어느 한 점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마다라도 응? 하고 같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인기척을 발견하고, 마다라는 소라보다 먼저 그쪽을 향해 성큼 걸어 나갔고, 남자는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선, 벽에서 튀어나오듯 그곳에서 나가 마다라를 피해 두 사람이 오던 쪽과 반대쪽으로 도주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소라는 왜인지 자신도 알 수 없고 이유도 없었지만 그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색이 어딘가에서 많이 본 색을 닮아있었으니까, 같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고 후에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순간, 소라가 마다라의 옆을 지나 뛰어나가 남자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소라가 남자의 팔을 향해 손을 내뻗은 순간, 남자의 팔이 소라를 내치기 위해 날아왔고, 순간적으로 그것을 피하던 소라가 남자의 웃옷을 잡고 제 몸을 숙였다. 자연스럽게 뒤에서 당겨진 후드 집업은 그대로 펄럭이며 땅에 떨어졌고, 후드에 끌려 남자가 쓰고 있던 모자도 후드와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가장 먼저 소라에게 보인 것은 평소라면 보고 싶지 않아 눈을 돌려버렸을,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또렷하게 마주해버린 검고 어두운 불안과 초조, 걱정의 색. 그리고 이어서 보인 것은 소라를 그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그 안에 숨어있는 조금은 기대하는 반짝거리는 파란 색이었다. 그 뒤, 마치 그의 그 모든 색을 합쳐둔 것만 같은 검푸른 머리카락이 보였으며, 이어서는 차가운 철 소리를 내며 복도 바닥에 떨어지는 철제 가위와 라이터가 보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남자였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향해 손을 내뻗으며 그것을 잡으려고 했다. 위험하다. 소라가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흉기가 될만한 커다란 철제 가위를 떨어트린 남자를 향한 생각인지, 아니면 그 남자에게 달려든 마다라를 향한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소라는 본능과 같은 그 감으로 숙인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남자의 낮은 비명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방금까지 떨어진 철제 가위가 있던 곳에는 이제 남자의 손이 있었고, 그 위에는 마다라의 신발이 있었다. 소라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가, 관엽식물보다 조금 더 멀리, 복도 너머의 벽 근처로 날아간 가위를 보고서야, 마다라가 가위를 쳐내고 남자의 손을 밟았음을 깨달았다.

 

“거, 거인 씨!”

 

남자가 앓는 소리를 냈고, 마다라는 제 웃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그런 남자를 내려봤다. 소라가 그 뒤에서 마다라를 불렀지만, 마다라는 제 쪽을 보지도 않고, 남자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다라의 안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불안과 혐오의 색에 소라는 눈을 질끈 감았고, 그 순간, 뒤에서부터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승, 사카사키 나츠메의 당황한 목소리였다.

 

“미케지마 마다라!”

 

당황한 나머지 평소와 같은 말투도 아니었으며, 평소 부르던 호칭도 아닌 그 말에, 마다라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고, 급하게 달려 나온 건지, 겉옷도 팔에 겨우 잡고 있던 나츠메와 그 뒤에서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듯한 서류를 든 채로 따라오는 츠무기가 보였다. 소라는 마다라의 안에서 퐁퐁 피어오르던 어두운 색들이 당황한 색으로 뒤덮이는 것을 보며, 그 색이 스승의 현재 색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찰나, 힘을 놓은 찰나, 남자는 마다라의 발아래에 놓인 자신의 손을 빼냈고, 마다라가 아차,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제 부어오른 손을 쥐고 몇 걸음 뒤에 떨어진 모자와 라이터를 줍고 있었다. 남자가 도망갈 준비를 하며 발을 디디려고 한 그 순간, 그를 멈추게 만든 것은 츠무기의 한 마디였다.

 

“……형?”

 

츠무기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가 가장 가까이 선 상태로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그러나 제지당한 상태로 뒤를 돌아보고 있는 마다라, 그리고 그 뒤에 여전히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소라, 그리고 마다라를 말리려고 서서히 마다라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나츠메, 그것보다도 더 뒤에서, 츠무기는 그저 한 마디, 형? 이라고 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모자를 줍던 자세 그대로 잠시 멈추었다가, 대답 대신 모자를 들어 제 머리에 쓰고, 후드를 포기한 채로 복도를 달렸다. 네 사람과는 반대 방향의 복도 너머로, 속도를 높여서. 마다라가 그를 쫓아가려고 했으나, 어느새 근처로 온 나츠메가 그의 팔을 잡으며 미케지마 선배, 하고 방금보다는 훨씬 차분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고, 결국 마다라는 대신 소라의 앞으로 와서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소라 씨, 괜찮으려나아? 하고 물으며 손을 내밀었다. 소라는 눈을 깜빡이고, 네, 소라는 괜찮아요. 도움을 받으면 인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거인 씨! 하고 말하며 그 손을 잡았다.

 

잠시, 네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곧 그중 두 사람, 나츠메와 마다라가 츠무기를 바라보았고, 츠무기는 가만히 남자가 사라진 복도 너머를 보다가, 두 사람의 시선을 이제야 눈치챈 듯이 아, 하고 말하며 손에 있던 서류를 그대로 와르르 떨어트렸다. 조금 전까지 소란이 있던 복도에 떨어진 서류가 열려 있는 복도 창문에서 흘러나온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와아, 종이들이 날아다녀요!”

 

소라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날아다니는 종이를 한 장 뛰어서 붙잡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 말에 긴장이 풀린 듯이 마다라가 하하 웃으면서, 그러게에, 이건 빨리 잡아야 하겠는걸, 하고 말했고, 나츠메도 정말, 선배, 뭐 하는 거야, 하고 평소와 같은 말투로 츠무기의 옆구리를 가볍게 누르곤 종이를 줍기 시작했다. 츠무기 역시 죄송하다고 말하며 네 명은 이다음 식사를 어디서 할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평소와 같은 대화였으며, 방금 있던 일을 서로 파고들지 않는 대화였다.

 

소라는 조금 더 멀리 날아간 종이를 줍기 위해 나츠메와 츠무기가 있는 쪽과는 반대쪽으로 걸어 나갔고, 그리고 그곳에서 종이 사이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남자가 들고 있던 철제 가위였다. 소라는 그것을 종이와 함께 주워들었다. 조금 무게가 있는 그것은 평범한 가위보다는 조금 더 오래되어 보이고, 고풍스러운 가위였다.

 

“소라 씨.”

 

그런 소라의 뒤에 어느새 마다라가 서 있었다. 거인 씨? 하고 소라가 대답하자 마다라는 입 앞에 검지를 세우곤 그 가위를 가리켜 제게 달라고 손짓만으로 말했다. 소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다라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적어도 마다라가 이 가위를 나쁜 일에 쓸 것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색이었으니까. 마다라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다라는 이어서 남자가 떨어트린 웃옷도 주워들고는 나츠메와 츠무기 쪽으로 돌아갔다. 마다라가 웃옷을 줍는 것을 보면서 소라는 그제야 남자가 웃옷이 아닌 모자를 떨어트린 곳도 이 근처란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모자와 라이터를 주우면서 바란다면 가위도 같이 주워갈 수 있었으면서, 남자는 그 근처에 떨어진 가위는 줍지 않고 갔단 사실을 깨달았다.

 

“소라 군, 거기 있는 것 다 주웠나요? 고마워요.”

 

소라가 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등 뒤에서부터, 츠무기가 다가오는 발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서, 소라는 괜히 제 몸을 일으키고 몇 걸음 더 다가갔다. 그곳은 그러니까, 처음 남자가 가위를 떨어트린 곳이었다. 소라는 가위가 떨어져 상처 자국이 남은 대리석을 발로 꾹 눌렀다. 마치 이 아래에 있는 것을 선배에겐 들키면 안 되는 듯이. 그리고는 츠무기에게 주운 서류를 건네주고는 방긋 웃었다. 후후, 소라가 다 모았어요, 하고 말하며, 소라는 그대로 발을 끌어 한 번 대리석을 차내듯이 긁었다.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대리석에 남은 그 상처 자국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눈앞의 색을 보며 소라는 생각했다.

 

2.5

 

그를 발견하면 즉시 쫓아내라는 명령을 내린 건 내가 맞아.

 

하하, 권력 남용이라니, 나는 일단 스타프로의 사장이면서 ES 건물 치안을 맡은 사람들 고용에도 권한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리고 사쿠마 군도 알고 있지 않아? 그 남자가 누군지. 너는 늘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관조하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인간을 잘 알아. 그리고 그 집을 잘 알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악의에 대해서는 어쩌면 사쿠마 군, 너보다도.

 

애당초 츠무기에게 있어 아오바란 것은 시한폭탄 같은 거야. 옛 피네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특유의 처세 덕분인지, 아니면 행운인지, 화제가 된 적도 없고 뒷이야기가 나온 적도 없지만 말야. 종교, 사기, 이혼, 어쨌든 그 집안은 문제의 소용돌이고 근원이고 진원이지. 그리고 그런 곳에서 잘난 가지 하나가 나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런 사람을, 그런 단체를 몇 번이고 봤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생기면 자기와 같은 늪까지 끌어내려. 그렇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그런 추한 종족들. 시기와 질투만을 가진, 추악한 인간들. 그러니까 아직도 연을 끊으라고 말했었는데, 츠무기가 그러지 못했으니까 결국 이렇게 된 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친구를 위해 한 선의의 행동으로 봐 주면 좋겠네, 사쿠마 군.

 

응, 나는 믿지 않아.

 

가족이니까, 피로 인해서 가지게 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애틋함 같은 것은.

 

03

 

하아, 하고 공간과 이질적인 한숨 소리가 번화가의 구석을 빙 맴돌았다. 가장 먼저 그 한숨인지 하품인지 모를 소리를 주워 담은 것은 시라토리 아이라에게 있어서는 어디까지고 쿨하고 멋진, 그리고 후배를 챙기는 ‘미카 형’인 카게히라 미카였다.

 

“응아, 시라토리 군, 무슨 일이고? 땅 꺼지겠데이.”

 

“카, 카게히라 선배애~! 들어보세요, 어젯밤 내내 같은 방의 사쿠마 선배랑 텐쇼인 선배가 뭔가 싸운, 아니, 싸운 건 아닌데, 으으, 묘하게 서로 보는 눈이 찌릿찌릿하다고 해야 할까, 차갑다고 해야 할까, 그런 분위기여서요~! 화,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난 거뿐인데, 제, 제가 자리에 없는 것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두 분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결국 그대로 두 분 대화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 문만 붙잡고 있었어요오... 나가질 못해서...”

 

아이라는 거의 누군가가 물어봐 주기만을 기다렸단 듯이, 팽팽해진 볼 안의 해바라기 씨를 쏟아내는 햄스터처럼 줄줄줄, 한숨 대신 차올랐던 말을 미카에게 뱉어내고는, 제 눈앞에 있는 기간 한정 딸기 푸딩 프라푸치노를 빨대로 휘휘 저어 한 입 쪼옵, 빨아 마셨다. 미카가 방금 들은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고르는 동안, 먼저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든 것은 아라시였다.

 

“어머, 둘이 싸운 거야? 사쿠마 선배랑 텐쇼인 선배가? 의외라고 해야 하나 드디어, 라고 해야 하나. 두 사람, 학교에서부터 사이가 험악한 건 아닌 것 같지만 의견은 정반대처럼 보였으니까.”

 

“그, 그런가요?! 으음, 어쨌든 그래서, 경비 관련으로 의견이 갈린 것 같은데, 또 거기서 제가 나갔다가 괜히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하는 흐름이 되는 것도 무서워서, 그냥 계속 숨어버렸는데, 자기 방에서 숨는단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뭔가, 너무 거물들이랑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느낌……. 아, 싫단 건 아닌데, 가끔 뭔가 세상이 다르구나~ 하고 느꼈단 이야기?! 제, 제가 이런 이야기 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괜히 선배들을 신경쓰게 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죄, 죄송해요, 히메미야 선배!”

 

그렇게 말하며 아이라는 슬적 제 옆에 선 토리의 눈치를 살폈다. fine는 원래도 사이가 좋지만 특히나 히메미야 토리가 텐쇼인 에이치의 원래 팬이면서 에이치를 존경하고 있단 것을, 아이라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괜히 제 불평이 자신이 좋아하는 에이치 님에 대한 모욕으로 히메미야 선배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마치 소동물처럼 눈치를 살피는 아이라를 보고 토리는 작게 한숨을 쉬며 제 음료를 한 입 마셨다.

 

“흐음, 시라토리가 말하는 그거, 그 침입자 이야기야? 최근에 그거 때문에 긴급 서밋도 열렸고, 에이치 님이랑 사쿠마 선배 모두 참가했기도 했을 텐데, 방에서까지 그 이야기가 나왔어?”

 

의외로 토리는 그런 것보다도 대화의 내용을 궁금해하는 듯이 아이라를 바라보았고, 아이라는 고개를 몇 번 빠르게 끄덕이고, 토리와 보폭을 맞춰 바로 옆을 걸어 나갔다. 토리와 아이라의 뒤로 미카와 아라시가 걸어 나가고, 가게를 나올 때부터 이바라에게서 연락이 왔네, 하고 전화를 하던 히요리는 여전히 몇 걸음 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애당초 이 다섯 명이 모인 것은 제47회 프리티 회의의 안건이 최근 방송국 앞에 생긴 카페가 커스텀이 가능하고 장식도 프리티하게 다양한 종류가 있단 이야기를 들은 프리티5의 수령, 토모에 히요리가 다음 활동은 그곳에서 음료를 프리티하게 만드는 거네, 하고 정했기 때문이었다. 각자 곰이며 리본이며 온갖 장식 초콜렛을 올려 꾸민 음료를 들고 가게를 나오기 시작했을 때, 아이라가 거대한 하품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것이었다.

 

“네에, 그, 저는 정말로 들을 생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그 범인분이, 아이돌과 가족 관계인 것 같아서요.”

 

“응아, 가족?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 아이가? 분명 직계 가족은 출입증만 있으면 같이 다닐 수 있다 칸거 같은디.”

 

“음, 그게요. 허락이 없었던 거 같아요. 출입증도, 보이진 않은 것 같고. 그래서 텐쇼인 선배는 돈이 목적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니까, 아무리 들어도 틀린 건 없는 것같은 말인데, 이상하게 사쿠마 선배가 거기에 뭔가 반론을 하셔서요.”

 

아이라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한숨을 쉬고 한 걸음 나갔다가, 눈앞의 등이 멈춰서는 바람에 저도 같이 걸음을 멈추었다. 멈춘 것은 아라시였고, 그 옆에서 토리도 우와, 하고 아라시의 시선을 따라 바닥을 보았다. 아라시의 등의 옆으로 고개를 빼곰 빼서 아이라도 그세 명의 시선의 끝을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아직 날지 못하는 아기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빽빽 울음소리를 내며 퍼덕이고 있었고, 그 옆을 보니 그리 높지 않은 가지 위에 사람이 지어준 것 같은 나무로 된 새 둥지가 보였다. 아마 떨어질 때는 저 나무 아래 풀숲으로 떨어졌을 텐데, 파닥거리며 날아보겠다고 한 게 실패해서 인도로 내려온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는 미카 옆에서 토리가 먼저 시라토리, 이거 들어 줘, 하고 자신의 짐을 건네왔고, 아이라는 앗, 네, 하고 얼떨결에 토리의 가방을 어깨에 메고 토리가 들고 있던 음료를 제 손에 들었다.

 

토리는 제 주머니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아기새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고, 나무의 높이와 자신의 키를 번갈아 보더니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는 새집은 토리가 손을 뻗으면 닿긴 하겠지만, 아기새를 조심스럽게 놓아 주기에는 토리 자신이 일단 새집이 보이지 않아 어려울 것만 같았다.

 

“저 높이면 아라시쨩이 올리는 편이 좋을 것 같네!”

 

어느새 전화를 마쳤는지, 제 휴대전화를 한 손에 든 채로 히요리가 네 사람의 등 뒤에서 그렇게 말하면서 상황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미카 군이 아라시쨩 가방을 들어주고, 아라시쨩이 토리 군에게 받아 올리면 되겠네! 하고 말하자 먼저 미카가 에?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루쨩, 내한테 가방 도, 하고 아라시의 가방을 가져갔다. 눈앞의 세 사람이 지시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아이라의 옆에 히요리가 서더니, 아이라를 바라보았다.

 

“방금 하던 이야기, 아이라 군이 말하는 걸 들으니 아이라 군은 에이치 군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네?”

 

아이라는 잠시 히요리가 제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고, 이내 그것이 아기새와 조우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하던 말이란 것을 깨닫고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네, 네에?! 아, 들리셨어요?”

 

“물론 멋대로 들려온 거라네! 거리가 있다 해도 그렇게 멀진 않았으니까 말이야.”

 

“으, 뭔가 그렇게 크게 말했나 하고 부끄럽네요……. 하지만, 네, 당연히 위험하니까요. 불법침입이란 거잖아요?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런 건, 제대로 된 절차도 걸치지 않으면 치사한 편법이고. ……게다가 듣기론 돈이 목적일 지도 모른다, 흉기가 있었다, 같은 소문도 돌고? 아이돌이 가득 있는 ES에 그런 인물이 들어오는 건 위험하니까, 경비를 강화하고 출입 금지한 텐쇼인 선배가 옳지 않을까요?”

 

아이라는 제 의견을 길게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히요리를 보지 않고 제가 들고 있는 두 개의 음료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자신의 음료수와 토리가 들고 있던 음료수였다. 페트병 컵 너머로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 물방울이 마치 식은땀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아이돌, 존경하는 선배, 그리고 자신보다 텐쇼인 에이치와 사쿠마 레이를 더 잘 알고 있을 인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이라에게 일종의 미니 테스트같았다. 정답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라는 우왕자왕하던 눈동자를 슬적 굴려 히요리를 바라보았다.

 

“글세, 아이라 군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말이네.”

 

히요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앞의 세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라도 히요리의 시선을 따라 눈앞의 세 명을 바라보았다. 토리가 천으로 감싸 올린 아기새를 천 통째로 아라시에게 건네었고, 아라시는 발뒤꿈치를 든 채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더니, 천째로 둥지 위에 올렸다. 잠시 파닥거리던 아기새는 이내 둥지의 안쪽으로 파닥거리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이야.”

 

두 사람은 눈앞의 풍경을 마치 느릿하게 흘러가는 무성영화를 보듯이 바라보았다. 히요리의 말투는 평소와 달리 어딘가 차분했으며, 그 속에는 이상하게도 평소의 가벼움보다는 어딘가 무거운, 차가운 쇠로 된 무게추와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평소라면 처음 듣는, 아이돌이기에 들을 수 있는 아이돌이 아닌 히요리 선배의 모습, 이라고 기뻐했을지도 모르나, 그 순간, 나뭇가지 위에 앉은 어미 새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아라시의 손을 쪼았고, 그와 동시에 아라시가 놀라며 지르는 높고 짧은 비명, 미카와 토리가 옆에서 놀라서 내는 탄성과 같은 소리에 모두 쓸려나가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먹이를 찾으러 떠난 어미 새에게는 아라시의 손이 자신의 둥지를 망가트릴 위협처럼 느껴졌는지, 집요하게 아라시의 손이 나무에서 떨어지는지를 노려보고도, 둥지 근처를 낮게 비행하며 위협하는 듯한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가족을 멋대로 떨어트릴 수는 없는 거야, 그 누구도…….”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던 아이라조차 갑작스러운 어미 새의 출연에 깜짝 놀라 입을 열고 무언의 탄성을 내뱉었는데도, 히요리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라는 그제서야 시선을 데굴 굴려, 히요리의 표정을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에이치 군이 한 행위를 용서할 수 없네.”

 

그리고 그 표정이 목소리만으로 상상한 것과 달리, 씁쓸한 기운을 띠고 있어서, 그대로 벌린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인가, 그의 개인사를 모르는 같은 서클 정도의 후배로서도, 아이돌의 후배로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팬으로서, 보면 안 되는 것을 봐 버린 기분이었다.

 

 

 

1.5

 

이번에는 가족이 여러 사람에게 큰 민폐를 끼쳐 죄송해요.

 

네, 이번에 ES 건물에 무단침입한 인물은 확실히 저희 형이에요. 저도 마지막으로 직접 만난 건 유메노사키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서니까, 아마 3년 만에 본 거지만, 그렇다고 자기 가족 얼굴을 잊어버리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아, 저는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지난달은 3주간 지방 출장이었어요. SSVR의 시제품 홍보 겸, 뉴디멘션이 가진 지방 아이돌 양성소에도 들리는 일정에, 사이사이에 서류 작업도 했었으니까. 정말이지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니까요, 아하하.

 

음, 형이 찾아온 이유는 솔직히 저도 짐작되지 않아요. 방금 말했지만, 저도 몇 년 만에 만나는 거니까요. 그사이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요. 뭐, 가끔 서로 필요하긴 하면 문자나 전화 정도는 했었지만, 그렇지만 형은 제가 유메노사키에 들어간 이후로는 계속 집에 없었으니까요. 입시 준비를 할 때까진 집에 있기도 했었으니까, 제가 아이돌을 목표한단 건 알았을지도 몰랐겠지만요. 그치만 ES에 제가 있단 것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뉴디멘션은 어디까지나 아직 소형 기획사고, 아이돌이란 것은 우리 같은 당사자에겐 세계의 전부지만, 어차피 세상에서는 직업 중에 하나, 엔터테인먼트 중에서도 하나, 같은 위치니까요.

 

하하,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에이치 군. 네, 이번 일은 책임지고 처리할게요. 그도 그럴 게, 가족의 일이니까요.

 

02

 

츠무기는 손에 들고 있던 페트병의 스티커를 하나하나 떼서 모은 것을 과자 쓰레기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고, 쓰레기통 옆에 있던 물티슈를 들고 책상으로 다시 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레이를 보곤 눈을 깜빡이고 물티슈를 몇 장 뽑으면서 레이가 있는 테이블을 향했다.

 

“레이 군, 아직 가지 않았어요?”

 

“그러는 아오바 군이야말로, 이런 일은 직원에게 시키는 편이 좋지 않겠누?”

 

“아, 저 어차피 한 시간 이후에 이 방에서 그대로 회의가 있어서요~ 어차피 그래서 그사이 1시간도 제가 예약했어요. 쉬려고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제가 해 두는 게 나을 거고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책상을 물티슈로 닦기 시작하는 츠무기를 보며 레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츠무기를 다시 부르더니, 자신이 앉아 있는 삼 인용 소파의 옆자리를 가볍게 손으로 톡톡 쳤다. 그것이 제 옆에 앉으란 신호란 것을 츠무기는 잘 알고 있었고, 결국 곤란한 듯이 웃으면서도 들고 있던 물티슈를 잘 모아선 책상 위에 두고 소파에 앉았다. 레이는 그런 츠무기의 어깨에 제 팔을 올리곤 츠무기를 옆으로 밀었다. 소파의 팔부분에 옆구리가 닿을 정도로 레이가 밀면 밀리는 대로 옆으로 쓰러진 츠무기는 곁 눈길로 레이를 보며 곤란하단 듯이 눈썹 끝을 내렸다.

 

“레이 군, 무거워요, 옆구리가 아파요.”

 

“후후후, 하지만 스트레칭이라네, 스트레칭. 어차피 요즘 이 일 때문에 잠도 제대로 안 자고 계속 앉아서 서류나 적은 건 아니고?”

 

“아니에요~ 이곳저곳 불려 나가서 사과 인사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때마다 나름 운동한다고 계단으로 이동했고요?”

 

그 말에 레이는 부러 내는 듯한 한숨 소리를 내며 츠무기를 잡았던 팔을 풀었다. 옆에서 누르던 무게가 사라진 츠무기도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아 앉았고, 레이는 츠무기가 조금 전까지 테이블을 닦던 물티슈를 돌돌 말아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포물선을 그으며 쓰레기통의 속으로 들어갔다. 츠무기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면서, 레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쳐버렸네요.”

 

레이는 제 손을 가볍게 털고는 츠무기 쪽을 보며 말했다.

 

“뭐, 아오바 군 탓은 아니니까 그렇게 침울해 하진 말게.”

 

“아뇨. 저를 찾아온 것이었을 테니까, 제 탓도 없다고 할 순 없죠. 가족이 폐를 끼친 거잖아요.”

 

“가족이라, 분명 이제 성은 다르지 않았던가? 물론 성이 다르더라도 가족일 수는 있지만 말일세.”

 

“아, 네. 형은 제 옛 아버지, 그러니까 생부의 성을 계속 쓰고 있으니까요. 저는 거기에 비해 어머니 성을 따랐으니까, 이혼하면서 한 번, 그리고 재혼하고 지금의 아버지 성으로 한 번, 총 두 번 바뀌었고요. 음, 그래서 아마 적법한 절차로 들어왔다고 해도 바로 제 손님이라고 다른 사람이 눈치채긴 어려웠을 거예요.”

 

“것 참, 새삼스럽게 복잡한 집이구먼.”

 

그 말에 츠무기는 하하하, 하고 건조한 웃음을 뱉었다가 입을 닫았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둘 사이에 흐르고, 츠무기의 몸이 스르륵 소파를 따라 미끄러지더니, 이내 바닥에 엉덩이를 내리고, 소파에는 고개만 올린 채로 레이를 올려다보았다. 레이는 그 모습을 가만 내려다 보았다. 먼저 말을 걸기보단, 츠무기의 말을 기다리는 듯한 그 붉은 시선에, 츠무기는 주저하다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레이를 보던 시선을 돌려 바닥에서 보이는 시야를 한 번 바라보았다. 테이블의 다리와 아랫부분, 쓰레기통과 그 옆에 놓인 포장된 채로 뜯지도 않은 회의용 생수와 다과들의 상자.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반투명한 유리 벽을 보며, 츠무기는 입을 열었다.

 

“결국, 형은 뭘 하러 왔던 걸까요?”

 

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정말로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 같은 레이군이라 하더라도, 남의 심리를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고, 설사 알았다고 해도 이 질문은 분명 타인을 통해 듣는 것은 분명 의미가 없는 답일 거라고, 츠무기는 납득하고 있었다. 결국 가족의 문제는 남의 일, 남의 집의 일. 온전히 아오바의 일이었다.

 

“……짐작가는 것도 없는고?”

 

그렇게 말하며 레이는 자신의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제몸을 굽혀 소파 아래에 있는 츠무기의 시선과 맞추고, 방금 꺼낸 것을 츠무기에게 보여줬다. 그것은 형사 드라마 같은 곳에서 자주 증거품을 넣을 때 쓰던 것처럼, 위에 메모지로 무어라 숫자가 적힌 종이가 붙은 지퍼백이었고, 그 뒤에는 파란색의 큐빅이 중앙에 하나 박힌 은색의 재봉 가위가 있었다. 요즘 아무 수예점에서 살 수 있는 기성품보다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그러니까 조금 오래된 골동품 가게에서나, 아니면 집마다 내려온 그런 가족의 수예 가방에서나 나올 듯한 앤틱 재봉 가위였다.

 

“어라, 재봉 가위, 인가요?”

 

츠무기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눈 앞의 지퍼백을 바라보았다. 레이는 그것을 츠무기의 품 사이에 떨어트렸다. 츠무기는 와아, 하고 그것을 집었고, 열어봐도 되는지 묻는 츠무기의 질문에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 갈색의 변색된 흔적이 보여서 골동품이가 싶었던 가위는 의외로 묵직했으며, 의외로 가위의 날만은 번쩍이며 츠무기의 파란색 머리카락을 반사해 보였다. 츠무기가 그것을 제 손가락에 끼우고 몇 번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것은 서걱서걱하고, 아무것도 없는데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잘 든 가위네요. 조금 오래되어 보이지만 그래도 무게감도 적당하고. 슈 군의 물건인가요? 약간 앤티크한 분위기인 게, 슈 군이 좋아하는 인형들과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아니, 그거, 아오바 군의 형이 들고 왔던 거라네.”

 

형, 이라는 말에 츠무기는 눈을 깜빡이고 들고 있던 가위와 레이를 번갈아 보았다. 형이요, 하고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레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미케지마 군이 보기엔 썩 흉기였나 보지. 품에서 이 가위랑 라이터를 떨군 걸 보고 일단 제압했었다는데, 일단 그냥 평범한 라이터와 가위래서 들고 왔지. 뭐어, 텐쇼인 군도 다른 사람들도 얼굴이랑 이름을 알아내는 거랑 시스템 관리에 집중해서 이런 거 하나둘 사라진다고 수상쩍어하진 않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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