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썰북은 올캐러 동축 리버시블 CP와 NCP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 3인 이상 관계성 오타쿠가 썼습니다.
- 해당 썰북은 '현재는' NCP를 전제하여 쓰였지만, 추후 창작자 본인이 온라인, 오프라인 등에 해당 썰북에 있던 내용을 변용, 수정하여 창작할 때 CP 연성으로 라벨링되어 재구성 될 수 있습니다. 해당 내용을 염두에 둬 주세요.
- 읽으시는 분이 NCP/CP 어느 쪽으로 해석하시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최대한 NCP를 전제하였지만, 읽은 사람이 CP라고 받아들이셨다면 그렇게 보셔도 됩니다.
- 위 내용에 대한 문의/비방 등은 일절 받지 않습니다. 자기 책임으로 읽어 주세요.
- 각 이야기의 주의 요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예의 끝] 카인의 기억 상실. 카인의 결혼 및 후손 설정. 사망 소재.
[우리는 고철 심장을 가지지 못했고] 미틸의 납치, 미틸과 모브를 향한 가벼운 폭력. 치렛타를 사랑한 모브 캐릭터.
[산송장들의 밤] 샤일록의 무르를 향한 강압적 행동. 사망 소재.
표지@hyperhighschool 님
카인+오웬+아서『유예의 끝』
어떠한 계기로 약속을 어겨서 마력을 잃고 인간이 되어버린 카인(25세). 오웬과 아서, 그리고 오즈와 피가로는 현자와의 논의 끝에 카인 나이트레이의 마법사로서의 기억을 빼앗기로 했다. 그는 기사단장으로 부임 중, 북쪽 마법사의 습격을 막다가 크게 다치어 쉰 것으로 처리되었다. 25세의 카인 나이트레이는 다시 기사단장이 되었고, 자신의 주군이며 마법사인 아서 그랑벨의 직속 부하가 됨.
오웬은 카인의 눈을 돌려주지 않았음. 멋대로 인간이 되어버린 쪽이 잘못이잖아. 그리고 그 눈이 서로의 반쪽이란 것을 구실로 ‘아서의 기사인 카인 나이트레이에게 묘하게 신경을 쓰는 현자의 마법사’처럼 굴기 시작함. 그래서일지 아니면 그 전부터일지, 아서와 자주 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오웬.
현자의 마법사란 건, 이 세계를 지키는 마법사잖아. 나 같은 일개 개인에게 신경 쓸 위치는 아니지 않아? 비록 내가 같은 현자의 마법사인 아서 님의 기사라 해도…….
됐으니까, 그 검 가지고 하는 것 좀 해 봐, 기사님.
카인은 가끔 훈련장에 나타나는 오웬과 그렇게 다시 안면을 틀게 됨. 마법사였던 때처럼 같이 외출을 하거나, 디저트를 먹는 일은 없지만, 인간이 된 카인에게 흥미를 잃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얕은 만남만 지속함. 오히려 아서를 더 오래 보게 되는 오웬. 아서는 카인에게 카인은 분명 다시 오웬이 친구가 되어 주면 기뻐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원래부터 친구가 아니었어. 왕자님이랑도 친구를 할 생각은 없어. 하고 거부함. 그렇지만 결국 몇 년에 한 번, 어쩔 수 없이 ‘기사단장’인 카인을 보러 가 버리고 마는 오웬.
기억을 지우는 것에 직접 관여한 피가로도 가끔 카인의 상태를 보러 옴. 주로 아서와 이야기를 하며 카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카인에게 존재를 인지하게 만든 오웬을 의외라는 듯이 말함.
기억은 지워달라고 했으면서 눈은 그대로 둔다니, 북쪽의 마법사의 생각을 상냥한 남쪽의 의사 선생님은 모르겠네.
하하, 하지만 그것도 분명… 오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웬 역시 그 나름대로 동화의 결말을 낸 것이겠죠. 하지만 피가로 님, 저는 가끔…. 이 동화가 해피엔딩일지 고민하게 되어요. 그를 정말 이런 형태로 ‘나의 기사’로 만들어 버려도 좋았던 걸까, 하고.
글쎄, 인생은 동화가 아니니까. 불을 뿜는 드래곤도, 성에 갇힌 공주님도, 그걸 구하러 가는 용감한 기사님도 동화와는 다를 수밖에.
그렇게 몇 번의 재액이 지나가고 카인은 영광의 거리에서 소개받은 여성과 결혼을 함. 씩씩하고 당찬 여성은 카인과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으며 아서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결혼을 함. 몇십 번의 재액이 지나고 아서가 왕이 되고 카인이 기사단을 은퇴하고 영광의 거리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쪽 현자의 마법사가 돌이 되었단 이야기를 듣는 카인. 왜인지 그걸 자신에게 전하러 온 아서가 제 안색을 심히 살피던 것 같은데, 카인은 왜인지 알 수 없었음. 대신 그 이후로 계속하여 가끔 눈을 깜빡이는 틈 사이로 알 수 없는 몇 년의 기억이 보임. 간단한 마법을 쓰는 자신, 검에 마력을 담아 휘두르는 자신. 하늘을 나는 자신, 그 어느 것도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신이었음. 카인은 처음에는 그것이 백일몽이라 생각함. 나이를 먹고 나니, 마법사였으면 어떠했을까 몽상하게 된 것이 나타난 것이라고. 그것이 너무나 정교한 기억이어서 자신은 사실 예술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같은 농담을 함.
그런데 약 5년 만에, 오웬이, 북쪽의 무시무시한 마법사, 트렁크 속에 머리가 세 개 달린 케로베로스를 키우고, 남의 불행을 양식으로 삼고, 그들의 비명을 음악으로 듣는 그가 75세를 맞이한 카인 앞에 나타났을 때, 카인은 그 모든 백일몽이 자신이 마법사이던 시절의 기억임을, 눈앞의 마법사는 자신의 눈을 빼앗고, 자신을 죽일 뻔하고, 자신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원수이자 스승, 적이자 친구였던 것을 모두 떠올려 버림.
그렇게 기억을 되찾는 카인과, 그런 카인을 피하려는 오웬과 그런 오웬의 둥실 뜬 발목을 다시 잡으러 가는 카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둘을 중재하는 아서 셋이서 카인의 마지막 5년을 같이 지내게 됨. 카인은 가끔 마법관에 와서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옛 추억을 이야기함. 카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그러나 이제 성장이 멈춰버린 마법사들은 늙어가는 카인을 보고 싶지 않아 피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에게 남은 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울면서 카인에게 달려오기도 했음. 그럴 때면 카인은 마치 손자와 손녀에게 해주었듯이 그 머리를 쓰다듬어 줬음.
아서는 카인이 기억을 되찾아도 이전과 변함없이 대하면서, 그의 말년을 아낌없이 지원함. 오웬은 한 번, 그런 아서에게 왕자님은(아서는 그럴 때면 더는 왕자가 아냐. 하고 말하곤 했음. 실제로 그는 그사이 왕이 되었다가, 후계에 자리를 물려주고 선왕이 되었음.) 카인이 우리를 증오하거나 미워할 거라곤 생각 못 해? 하고 비꼰 적이 있었음. 아서는 거기에 너는 그걸 말하면서 ‘우리’라고 하네, 하며 웃었음. 그리고 결국 어느 날, 거동이 힘들어진 카인의 침대 옆에서 오웬은 카인에게 물어봄.
왜 기억해낸 거야? 카인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오웬의 아직 젊은 청년이나 다름없는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만은 쾌활한 청년 시기의 그것과 같았다. 그래, 굳이 이유를 붙인다면……. 카인의 흰머리가 창문 너머로 분 바람에 흔들렸다. 오웬은 카인의 손을 떼어낼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카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주름이 접힌 눈가가 호선을 그리며 접혔다.
동화는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게 취향이거든.
* * * * *
파라독스 로이드_미스라+루틸+미틸
『우리는 고철 심장을 가지지 못했고』
워킹 클래스. 어시스트 로이드는 자신과는 무연인 것이라고 생각하던 루틸은 어느 날 우편함에 이상한 편지가 꽂힌 것을 봄. 협박장이었음. 치렛타의 유산을 포기해라. 치렛타란 것은 제 어머니, 하이 클래스며 그 가르시아 박사와도 동업을 했었던 어시스트 로이드의 권위자임. 그런 치렛타가 워킹 클래스의 남자와 결혼하여 스스로를 워킹 클래스로 강판한 것을 비난하는 자들은 많았고, 치렛타는 생전에도 그런 비난으로부터 늘 루틸을 보호하려고 했음. 루틸은 그걸 알기에 이것이 그냥 이제 자신을 막아줄 어머니도 아버지도 돌아가서 제가 직접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라 생각하며 넘김. 그러나 며칠을 이어 오는 협박에 가까운 문구에, 다시 그 협박장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됨.
그리고 그것이 치렛타 박사가 남긴 어시스트 로이드를 상속하는 문제에 관한 것임을, 어떠한 기회로 친해진 숨겨진 하이 클래스의 귀공자 히스클리프의 설명으로 알게 됨. 요즘 하이 클래스 사이에서 유명한 소문이야. 치렛타 박사의 어시스트 로이드가 암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됐는데, 유산상속 장치가 발견되었다고……. 루틸은 자신이 그런 일에 얽혔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어서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익명의 전화가 옴.
형님! 미틸은 그 뒤로 뭐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곧 입이 막힌 듯한 소리만을 냄.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이어짐. 동생을 구하고 싶으면너 혼자.
루틸은 눈이 뒤집혀서 냅다 에어 바이크를 타고 알려준 주소로 달려감. 그곳은 멀끔한 저택이었음. 초인종을 누르고 루틸 플로레스라고 말하자 시중인이 나와 맞이하더니, 이내 루틸의 손을 묶고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데려감. 다시 루틸의 눈에 빛이 들어왔을 때, 눈앞에는 식사가 준비된 테이블과, 그 끝에 앉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있었음.
네가 치렛타의 아이구나. 너는 동생보다 더, 아주 많이 치렛타를 닮았네.
제 어머니를 아시나요?
잘 알지. 그러니 저것은 내가 가져야겠어. 너는 이미 치렛타를 가졌잖아.
저것? 그제야 루틸은 자신들 사이에 또 한 명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음. 축 늘어진 몸은 순간 시체를 연상시켜 루틸은 손을 움찔거림. 그것은 어시스트 로이드였음. 붉은 머리에 긴 몸체를 가진. 저것, 이라고 한 것은 그 어시스트 로이드임이 명확했음. 저것이 그렇다면 치렛타 박사가 남긴 어시스트 로이드였을 것이고, 그 유산상속 장치가 작동하지 못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루틸은 자신이 왜 여기에 불러왔는지 알 수 있었음. 눈앞의 여자는 저것을 움직이게 하고 떠나길 바라는 것임. 치렛타의, 사랑하는 어머니의 유품을 제 손으로 자신에게 건네기를 요구받고 있는 것임.
제가 저것을 건네드리면, 미틸을 풀어 주시나요? 물론이지. 사랑스런 동생은 지금 옆 방에 있어. 이 일만 마치면 차려진 식사도 하고 가도 돼.
루틸은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감. 그리고 그것을 다시 본 순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깨달음. 미스라 아저씨. 어릴 적, 어머니가 자신에게 소개해 준 적 있는 그가, 어시스트 로이드라곤 전혀 알지 못했음. 자신과 자신의 동생을 지킨다고 한 그 사람이, 어시스트 로이드였음. 루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도 여자의 재촉에 어시스트 로이드에 연결된 장치를 건드리기 시작함. 유산상속과 관련된 문서들이 화면에 튀어나왔고, 그것을 처리하면서 루틸은 마음을 굳힘. 그 붉은 머리를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음. 그렇기에 마지막에 상속자의 서명을 하는 자리에 제 이름을, 루틸 플로레스의 이름을 씀.
미스라 씨, 당신의 주인은 저예요.
여자는 그때까지 순순히 제가 말한 절차를 따르던 루틸의 마지막 배신에 믿을 수 없단 듯 표정일 일그러트림. 동생이 어떻게 되어도 좋단 거야? 여자는 시종인을 부름.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눈을 뜬 미스라가 시종인과 여자를 제압함. 루틸은 제 눈앞에서 포박되는 사람들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지 아니면 애석한 눈빛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며 미스라에게 다가감. 미스라 씨, 동생을, 미틸을 찾아 주세요. 이 저택 안에 있다고 했어요.
미스라는 막상 작동을 하긴 했는데, 눈앞의 상대를 인지하지 못한 듯이 빤히 보다가, 치렛타, 당신 절 왜 동결시킨 건가요. 같은 말이나 뱉음. 루틸은 치렛타는, 제 어머니는 이제 없어요. 제가 당신을, 상속받았어요. 하고 말함. 미스라는 그 말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럼 지금은 당신이 오너란 거죠? 는 어시스트 로이드의 기본 기능이기에 알 수 있었음. 알았어요. 그래서 그, 미틸? 동생? 이란 건 어딨죠? 옆 방이랬어요. 하아…….
미스라와 루틸은 같이 미틸을 찾음. 미틸은 다행히 바로 옆 방에 있었음. 묶인 채로 감시를 받고 있던 미틸을 발견함. 그대로 미스라가 감시하던 사람들을 쓰러트리고 루틸은 미틸을 끌어안고 미틸을 묶은 밧줄을 품.
세 사람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옴. 지친 미틸은 중간부터 루틸의 등에서 자고 있었음. 자는 미틸을 침대에 눕히고 나서 루틸은 가만히 문 앞에 서있는 미스라를 봄. 들어와요. 좁은 집이네요. 창고인가요? 아뇨, 저와 미틸의 집이에요. 하아. 루틸은 자는 미틸의 침대 구석에 앉고 자신의 옆에 미스라를 부름. 미스라는 멀뚱멀뚱 루틸의 앞에 마주 섰다가 루틸이 다시 말하자 그 옆에 앉음. 칭얼거리며 잠꼬대를 하는 미틸의 손을 잡은 루틸은 다른 한 손을 들어 미스라의 손 위에 겹침.
어머니는 왜 어시스트 로이드를 만들었을까. 왜 미스라 씨를 만들었을까.
아버지는 어쩌면 답을 알지도 몰랐음. 그러나 그렇기에 아무도 루틸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없었음.
그렇기에 루틸의 두 손에 남은 것은 강철 심장을 가진, 앞으로 함께 있을 이 어시스트 로이드와, 지금도 뛰고 있는 맥박을 느낄 수 있는 동생뿐이었다.
* * * * *
무르+샤일록 『산송장들의 밤』
희대의 천재, 무르 하트가 죽었다. 아니, 죽지 않았다. 영혼이 부서진 것이다. 그렇다면 인정해야 한다. 영혼이 부서진 것을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눈앞의 땅을 기어 다니는 저 알몸의 덩어리를, 무르 하트라고 인정해야 한다.
무르의 조각을 모으기 시작하기 전의 샤일록은 피폐해져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는 차라리 낫다. 어린 시절에 자신도 가문의 신생아들을 마주한 적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해 옹알거리기만 할 뿐이었지만, 무르 하트는 달랐다. 그의 신체는 이미 마력의 숙성과 함께 성장을 멈춰, 인간의 최전성기, 20대의 신체를 한 상태로 신생아가 되었다.
저 혼자 옷을 입지 못하고, 유창한 말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런데도 넘치는 힘과 제 몸에 갇혀 허우적대며 그저 바닥을 기며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살덩어리…….
무르의 조각을 모으기 시작한 본편 이전의 샤일록. 제 몸을 제어하지도 못하는 현재의 무르를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베넷 바도 열지 못한 채로 무르의 옆에서 무르, 무르, 하고 그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음.
지친 샤일록의 옆에서 팔을 막 휘두르던 무르는 책상을 무너트리고, 그와 동시에 무르의 영혼이 깨지고 그것을 수습할 때 주워놓고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한 퍼플 사파이어 조각들이 든 병을 깨트리고 맘. 그런데 무르가 그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관심을 가짐. 샤일록은 책상이 무너지고 병이 깨지는 소리에도무심한 상태로 멍하니 있던 샤일록은 순간 무르가 그것을 건드리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다가감. 그러나 이미 무르의 손에는 퍼플 사파이어가 쥐어져 있고, 그걸 입으로 가져가고, 그 조각이 마치 마나석처럼 흡수되어 사라지는 순간을 목도함.
아, 그렇구나. 저건 어느 의미 무르 하트의 마나석이구나. 아니, 마나석일 리 없어. 그렇다면 왜 퍼플 사파이어지? 그렇다면 왜 내 눈앞에 움직이는 무르 하트의 육체가 있는 거지?
혼란에 빠진 채로, 이 조각이 어쨌든 마나석과 같은 원리로 운용되는 것이라면, 하고 그대로 현재 무르의 몸을 잡고 무르, 입을 열어요. 하고 무르의 턱을 억지로 열어서 조각을 넣기 시작함. 처음 한 조각까지는 얌전히 먹던 무르도 그게 세 개, 네 개가 되자 점차 질렸는지 투정을 부리는데, 샤일록은 이걸 다 먹이면 마치 옛 무르가 돌아올 것 같아서, 샤일록도 포기를 못함. 결국, 둘이 땀 뻘뻘 흘리면서 샤일록은 평소에 늘 묶던 머리도 다 풀고 헝클어진 채로 다 먹이지 못한 조각 사이에 무너짐. 무르의 영혼 조각 사이에 주저앉은 샤일록 너머로, 그새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린 무르가 책장으로 기어감. 샤일록은 무르가 움직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조각들을 주워 다시 마법으로 이어붙인 병 속에 넣음. 그런데 바로 그때, 무르가 책장에서 책을 꺼냈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행동이었음. 그러나 무한을 반복하면 원숭이가 아무 자판을 눌러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일이라 생각하고 샤일록은 그것에 곁눈질 이상을 주지 않았음. 그런데 그다음 순간, 무르가 그 책의 제목을 읽었음.
『산송장들의 밤』. 한 때 무르 하트가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냈던 괴기 소설이었음. 거기서도 분명, 되살아난 좀비를 다루었음. 샤일록은 제 눈을 질끔 감았음. 왜냐하면, 자신은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음. 영혼 조각을 먹이는 것이 효과가 있단 것을 입증해서. 그러나 그러고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저것이어서 절망함. 무르, 당신은 정말이지…… 최악이에요. 대답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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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스노우+화이트+피가로
『재는 남김없이 먹으렴』
아서를 보낸 뒤 처음으로 오즈의 저택을 찾아가는 피가로. 너, 지금 밖이 어떤 꼴인지 알아? 한동안 눈 폭풍이 너무 심해서 접근도 못 했어. 이 내가 말이야. 그런 것 치곤 눈송이 하나 묻히지 않은 채로 형제제자의 집에 들어온 피가로는 마중도 나오지 않은 동생제자를 다 꺼진 모닥불 앞 가죽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음을 보고 미간을 찌푸림. 여기까지 널 찾으면서 봤어. 아서의 방. 재로 만들었더라. 너무하네, 넌 언제나. 그렇게 아서를 아꼈으면서……. 피가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즈가 앉은 가죽 소파에 손을 올림.
그 순간, 오즈가 마치 기계장치 인형처럼 끼긱 소리가 날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림. 그리고는 피가로가 거기에 있단 것을 인지하고, 그 다음 순간 피가로는 오브를 꺼냈음. 오즈가 지팡이를 꺼낸 것을 파악하자마자, 마치 그럴 것이라 예상한 것처럼. 오즈가 아서에 대한 것을 없애고 있다면, 저 역시 아서에 부속되는 존재일 것을, 피가로는 재로 변해버린 방을 보면서 예상할 수 있었음. 결국, 자신은 오즈에게, 동생제자에게 그런 존재에 불과했음. 스승의 부속으로 달린 형제자, 사랑한 아이의 부속으로 달린 육아의 도우미. 그리고 그렇기에 언제나 오즈에게 자신이 버려지는 것을…… 이미 피가로는 몇백 년 전부터 알았으니까.
두 주문이 동시에 울리려는 순간, 그보다 먼저 어스름한 저택에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울렸음. 《노스콤니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타난 스노우와 화이트가 둘을 제지함. 갑자기 끼어든 스승은 제정신이 아닌 오즈를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천 년하고도 몇백 년 전, 처음 오즈를 저택에 데려오기 위해 마법으로 묶었던 날처럼 오즈를 포박함. 그때에 비해 덩치만 커진 오즈가 스노우와 화이트, 피가로 앞에 있었음. 스노우와 화이트는 어느새 어른 모습이 되어 오즈를 쓰다듬고 위로함. 마음을 망치기 전에 그만하렴. 피가로는 그 모습에 눈길만 가볍게 주고는 마법으로 저택을 정리함.
아서의 방에 피가로가 들어갔을 때, 화이트가 몰래 피가로의 뒤를 따라옴. 재는 주렴. 처음이 아니야. 알고 있으셨나요? 두 분 모두? 저는 몰랐어요. 이잉, 매정하긴. 수백 번, 수천 번, 어쩌면 그 이상이겠지. 그 오즈라고요? 그래, 그 오즈가 말이다. 아서는 죽지도 않았잖아요. 사라지지도 않았고, 중앙으로 그 녀석이 한 발자국만 이 성에서 나가면 만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말이다.
피가로는 화이트에게 뭐라 더 말하려다가 이내 제 미간을 잡고는 마법으로 재를 모아 화이트가 들고 온 유리 상자에 넣음. 텅 비어버린 방을 두고 피가로는 여기에 은발의 아이가 지내던 시절을 잠시 회상함. 그 아이는 조금만 나가면, 중앙의 성에 있었음. 그 성의 창문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피가로 님! 하고 자신을 다시 불러줄 것을 피가로는 알고 있었음. 그럼에도 오즈가 그러지 않는다면……. 피가로는 방문을 닫음. 중앙 나라에 가는 것은 퍽 오래간만이 될 것이었음.
피가로가 화이트와 함께 저택의 담화실로 돌아가자, 스노우가 오즈의 머리카락을 묶어주고 있었음. 정리되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다시 평소의 오즈처럼 한 가닥 높게 묶어짐. 밥을 먹자꾸나. 그렇게 말한 것은 스노우였음. 네 사람은 그 뒤 몇백 년 만에 식탁을 둘러싸고 같이 밥을 먹음. 스노우와 화이트가 가져온 음식들은 모두 마을의 사람들이 헌상한 것이었음. 마을 전통의 스프에, 따끈하게 구운 빵, 지비에 사슴 요리, 슈가를 넣은 홍차까지 마무리하고 스노우와 화이트는 유리 상자를 들고 먼저 나갔음.
식사 중에도,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오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피가로가 가장 늦게 오즈의 저택을 떠날 때까지 눈보라는 다시 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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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브래들리+네로
『The JOKER in the pack』
어느 날 밤, 네로의 방 앞에서 마주친 파우스트와 브래들리. 뭐야? 저주상. 네로 녀석한테 볼일이라도 있어? 임무에서 좋은 술이 들어와서……. 그러는 브래들리, 너야말로 무슨 일이지? 뭐,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같은 대화를 하다가 네로가 방에 없어서 식당이려나 하고 내려가던 길에 갑자기 날아온 깃털초에 재채기를 한 브래들리와 그런 브래들리와 우연히 닿아 있어서 같이 날아가는 파우스트.
두 사람이 날아간 곳은 북쪽의 허름한 판잣집 앞이었는데, 그곳은 마침 브래들리가 약 300년 전에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었음. 두 사람은 일단 마법을 써서 바람을 막고는 파우스트가 빗자루를 꺼내는데 브래들리가 여기 분명 오래 묵힌 빈티지 와인이 있을 거라고 들어가 보자고 해서 들어가게 됨.
안은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마법 한 번으로 꽤 쓸만해 진 공간에 앉아서 브래들리가 지하실 바닥 열고 있는데 파우스트는 난로 앞에 앉아서 불멍하는데 난로 주변에 태우다 만 책 같은 것들이 보여서 그걸 살펴봄. 근데 그게 네로가 썼던 일기장이었음. 네로의 필적을 파우스트는 한눈에 알아봄. 어? 하고 그걸 팔랑이며 넘기는데 거기에 적힌 건 대부분 대량 요리의 조리법이었음.
있어, 있었어. 저주상. 하면서 빈티지 와인을 들고 올라온 브래들리는 파우스트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반 정도 타버린 책이 뭔지 한눈에 알아차리고 벌레 씹은 표정으로 단숨에 바뀜. 봤냐? 보고 있다만. 들킨 거냐? 네로의 요리책을 훔친 건가? 하하, 눈치 없긴. 브래들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파우스트의 반대편에 앉음. 그리고는 어느새 먼지 쌓인 잔을 마법으로 불러와서는 닦아내고 빈티지 와인을 졸졸 따름. 하나를 파우스트 앞에 건네고서야 입을 뗌.
브래들리는 계속하여 파우스트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음. 바로 네로와 파우스트의 관계였음. 브래들리는 파우스트와 네로의 관계를 무어라 정의할지 계속해서 찾고 있었음. 네로가 누군가와 저런 관계를 맺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임. 그러니까 이번 기회는 호기였음. 브래들리는 가볍게 파우스트를 떠보기로 함.
네 과거는 알고 있어, 중앙의 건국 영웅, 성스러운 마법사 파우스트 라비니아. 그건 내가 아니야. 하하, 이제 와 속이긴 늦었지. 너보다 젊은 마법사들에겐 몰라도, 그 혁명 때 이미 우린 100살을 넘긴 마법사들이었다고.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네 스승마저도……. 떡밥을 던진 것은 브래들리였고, 파우스트는 심리전이 특기인 편이 아니었음. 결국 파우스트는 두 손을 듦. 브래들리는 피식 웃음.
네가 숨기는 것이 있듯, 네로도 네게 숨기는 게 있는 거야. 그 일기장 같은 거 말이지.
파우스트는 그 대답이 자신이 한 질문(네로의 책을 훔친 건가?)의 답변이 되지 않아 채 납득하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네로와의 서로 간섭하지 않는 ‘동쪽 마법사’의 거리에 안주하고 있던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왜 태우다 말았지? 파우스트는 대신 다른 질문을 함. 브래들리는 키득 웃으면서 와인을 마심. ‘우연히’ 내 주머니에 있던 게, ‘우연히’ 탄 거야. 모두 우연이지. 그렇다면 내가 ‘우연히’ 주웠으니 ‘우연히’ 가져가도 상관없겠군.
그렇게 두 사람은 와인과 타다 만 일기장을 들고 더 밤이 늦어지기 전에 마법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시도함.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재채기를 이용해서 일단 빗자루 타기 좋은 곳까지 가려고 했는데, 남쪽의 뭔 미지의 정글에 가거나, 더 북쪽에 있는 설산에 가거나, 서쪽의 이상한 거리에 떨어지거나 하는 그야말로 재난이 있어서, 두 사람은 결국 이상한 거리에서 빠져나와 조금 멀쩡한 서쪽 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기로 함.
한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네로는 갑자기 서쪽 특유의 정령을 잔뜩 몰고 돌아오는 선생과 브래……들리 군을 보고 당황함. 왜 둘이 같이 들어와? 아침에? 근데 그 손에 브래들리는 고급 빈티지 와인을, 파우스트는 자신이 한 300년 전에 쓴 일기장을 들고 있어서 더 소리 없이 비명 지름. 정말로 그게 거기서 왜 나와, 예측은커녕 상상도 못 한 일을 가끔 파우스트는 했음.
파우스트는 가볍게 네로에게 인사하고 피곤하니 한 번 더 자겠다. 아침은 괜찮다는 이야길 하고 올라감. 남은 브래들리는 치킨 없냐고 아침부터 네로의 어깨에 제 팔이나 올림. 네로는 그런 브래들리한테 너 선생을 어디에 데려간 거냐. 왜 그걸 선생이 들고 있는 거냐. 설마 너, 나와 네 관계를 파우스트한테 말한 건 아니지?! 하고 놀란 얼굴로 우다다 말하기 시작함. 브래들리는 제대로 듣곤 있는지 모를 표정으로 네로가 썰고 있던 빵 조각이나 훔쳐 먹음.
언제까지 숨길 순 없어. 너도 저주상의 비밀을 알면서 모른 척했잖아. 아, 이젠 직접 들었다고 했던가?
브래들리는 네로에게 파우스트가 자신의 과거를 밝힌 것을 들었음. 네로의 앞에서만은 아니라, 동쪽 마법사 모두에게. 그러니 당연히, 그가 피가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일도 말했을 것이라고, 그가 피가로의 제자인 것을 네로도 알 것이라 착각하는 구절이 있었음. 네로는 브래들리의 말에 한숨을 작게 쉼.
선생의 과거는, 비밀은 떳떳한 내용이잖아. 그런 사람의 앞에서는 말 못 해.
네 과거는, 네 비밀은, 그리고 거기에 포함된 나는 그렇지 못한 건가? 브래들리는 그 말을 하는 대신 입안에 들어와 있던 호밀빵을 삼킴.
역시, 브래들리에게 파우스트 라비니아란 네로 터너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피가로의 제자인 이상 앞으로 치를 일의 가장 큰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만드는, 그야말로 조커였음.
재밌군. 어젯밤 저와 함께 있던 파우스트를 생각하며 브래들리는 되려 피가 끓었음. 조커를 어디까지 다루느냐에 성패가 걸리는 것이 도박이었으니까.